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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부정공>양벽정지측량기(漾碧亭址測量記)
漾碧亭址測量記 府北富有縣梅雨村右江上古有漾碧亭即我先祖三灘公當嘉靖乙巳士禍之際遯居卜築而巖面有河西玉峰兩先生同遊題名世遠亭廢遺址徒存故左右禁護界限幾乎不辨心甞慨然當此測量自家所有之時大會宗議考據邑誌所載與官題立旨自亭後巖石東直線中至栗木南邊下至村路上棘木立處受證於東邊山主柳興壽與起耕人柳興浩復自亭後巖石西叢竹數本以下直線至路上趙塚左邊花木成林之處受證于西邊山主趙重訓與檢查員金相培傍證人柳榮模詳審談辦立石表限定爲境界而柳趙受證諸書貼連中年官題決案之上聞于儒林傳之子孫而又以肯搆之志出米立契永爲百千歲守護之前鑑焉建築先亭不日成高飛燕雀賀爭鳴舊貫仍來知肯搆前賢遊去講明誠有主江山隨處好無邊風月滿天生新修菜禮多行樂只恐年年負此盟 後孫 鍾悳 謹書 양벽정지측량기(漾碧亭址測量記) 북부 부유현 매우마을 오른쪽 강우에 옛부터 양벽정이 있으니 곧 우리 선조 삼탄공 이가정(嘉靖) 을사(乙巳) (一五四五)년 사화 때 숨어 살며 땅을 가려서 건축하고 바위 전면에 하서 옥봉 양 선생과 함께 놀며 이름을 새긴 것이 있는데 세대가 오래되어 정자가 헐리고 빈 터만 있는 고로 동서남북 한계를 거의 알아볼 수 없어 마음으로 일찍 개탄하였더니 마침 세부 측량할 때를 당하여 크게 종회를 열고 읍지에 등재한 바를 고증하여 관부의 명문을 얻고 정자 뒤에 바위돌로부터 동쪽으로 바로 가운데 밤나무 남쪽 아래마을 길 위에 가시나무 선 곳까지는 동편 산주 유흥수(柳興壽) 및 기경한 사람 유흥호(柳興浩)에게 증서를 받고 정자 뒤 바위돌로부터 서쪽 떨기대밋 나무아래 직선으로 길 위에 조 씨의 분묘 왼쪽가에 꽃나무 성림한 곳을 서편산주 조중훈(趙重訓) 및 검사원 김상배(金相培) 방증인 유영묘(柳榮模)로 더불어 자상히 심사 담판하여 증서를 받고 돌을 세워 한계를 표하고 유 씨, 조 씨에게 받은 증서는 중년 관제 결안에 첨부하여 유림에게 알리고 자손에게 전하였으며, 또 선영께서 물려주신 터에 정자를 지을 뜻으로 쌀을 거두어 계를 조직하여 길이 백천세 수호할 터전을 마련하였다. 건축한 선정을 며칠이 못 되어 완성하니 제비와 참새가 높이 날며 하례하고 다투어 우네(建築先亭不日成 高飛燕雀賀爭鳴) 옛터에 거듭 와서 부조의 뜻을 이루고 옛날 현인은 놀고 갔는데 강한 것이 밝고 성실하다.(舊貫仍來知肯搆 前賢遊去講明誠) 주인 있는 강산은 곳에 따라 좋고 가이없는 풍월은 하늘 가득히 낫더라.(有主江山隨處好 無邊風月滿天生) 새로 닦은 제사에 행낙이 많으니 다만 해마다 이 맹서를 저버릴가 저어하노라.(新修菜禮 多行樂, 只恐年年負此盟) 後孫 鍾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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